심심풀이 1분 소설 · 창작 단편집

잠깐, 한 편만.

막차의 빈자리부터 달에 도착한 택배까지.
짧은 이야기 여덟 편, 결말까지 여기에서.

먼저 읽을 한 편 · 막차의 자리
다정한 이야기

막차의 자리

기사님은 아무도 없는 정류장에서 꼭 문을 열었다.

막차의 자리 읽기약 1분

막차 기사님은 공단 끝 정류장에 닿으면 꼭 문을 열었다. 사람은 없었다. 나는 야간 근무가 끝날 때마다 그 버스를 탔고, 한 달쯤 지나서는 이유를 물었다. 기사님은 문 위의 거울을 보며 말했다. “가끔 늦게 나오는 분이 있어서요.” 문이 열린 동안 가로등 아래 날벌레 몇 마리만 들어왔다.

그날은 비가 몹시 왔다. 공단의 마지막 식당도 문을 닫았고, 정류장 안내판은 철거를 앞두고 비닐에 싸여 있었다. 기사님은 평소처럼 문을 열고 기다렸다. 나는 괜히 가방을 무릎 위로 올렸다. 빈자리 하나가 더 생겼다. 와이퍼가 세 번 왕복하고, 다섯 번 왕복했다.

작은 그림자가 비닐 사이로 튀어나왔다. 허리에 노란 띠를 맨 개였다. 개는 버스 계단 앞에서 멈춰 젖은 털을 털었다. 기사님이 운전석 옆 통에서 수건을 꺼냈다. “식당 아주머니가 다음 달에 이사하세요. 그때 데려가기로 했어요.”

개는 빈자리엔 관심도 없었다. 기사님 발치에 둥글게 누웠다. 내가 가방을 도로 내려놓자 기사님이 웃었다. “손님 자리는 안 뺏어요. 직원이라.” 다음 날부터 내 주머니에는 늘 작은 수건이 한 장 들어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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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이야기

잘못 온 택배

수취인은 내 이름인데, 보낸 사람은 열 살의 나였다.

잘못 온 택배 읽기약 1분

독립한 첫날, 새집으로 택배가 왔다. 수취인은 내 이름. 발신인도 내 이름이었다. 상자 안에는 지우개 반쪽, 녹슨 열쇠, 연두색 공책이 있었다. 택배를 잘못 보냈냐고 엄마에게 전화하자 “네가 주소 써놨잖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공책 표지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어른이 된 나의 집’이라고 적혀 있었다.

열 살 때 묻은 타임캡슐이었다. 나는 큰 회사에 다니고, 강아지를 키우고,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을 가득 채울 미래를 써놓았다. 실제로는 작은 회사에 다녔다. 집에는 강아지를 키울 수 없었다. 냉장고는 아직 배송되지 않았다. 이삿짐 사이에 앉아 그 세 가지를 차례로 읽었다.

마지막 장에는 계약서가 있었다. ‘이걸 읽은 어른은 오늘 꼭 분식집에서 튀김을 사 먹을 것. 이건 어린이가 어른에게 주는 용돈.’ 천 원짜리 두 장이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모서리에 손톱으로 눌러놓은 자국까지 그대로였다.

나는 집 앞 분식집에서 튀김을 샀다. 이천 원으로는 조금 모자랐지만 내 돈을 보태면 됐다. 엄마에게 사진을 보내고 공책에 답장을 썼다. ‘집 잘 구했다. 튀김은 내가 더 샀어. 너는 걱정 말고 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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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먼 미래

달 배송은 문 앞에

지구에서 온 상자에는 완충재가 유난히 많이 들어 있었다.

달 배송은 문 앞에 읽기약 1분

달 기지에서 택배를 받으려면 주문한 사실을 잊을 만큼 기다려야 했다. 나는 지구에서 머그잔 하나를 주문했다. 기지의 금속 컵은 뚜껑을 열 때마다 소독약 냄새가 났다. 흰 도자기에 파란 줄이 그어진 평범한 잔. 배송료가 물건값보다 열일곱 배 비쌌다.

넉 달 뒤 상자가 왔다. 완충재가 잔보다 훨씬 많았다. 신문지, 종이 봉투, 구겨진 영수증. 동료가 포장 비용까지 계산해 보겠다며 신문지를 펼쳤다가 멈췄다. 동료의 고향 야구팀이 연장전에서 이긴 날의 신문이었다. 그는 그날 경기 중계를 통째로 외우고 있었다.

다른 동료는 빵집 봉투를 집어 들었다. 자기 학교 앞 가게라고 했다. 누군가는 영수증 뒷면에 적힌 우산 할인 문구를 한참 바라봤다. 여기서는 우산을 쓸 일이 없었다. 우리는 잔을 식탁 가운데 두고, 포장지 여섯 장을 조심스럽게 나눠 가졌다.

다음 주문에는 잔을 넣지 않았다. 판매자가 연락해왔다. ‘포장지만 보내 달라는 게 맞나요?’ 나는 맞다고 답한 뒤 한 줄을 더 썼다. ‘가능하면 빵집 종이 봉투도요. 부스러기는 털지 않으셔도 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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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먼 미래

로봇의 고장 기록

오류는 하루에 한 번, 꼭 같은 창가에서 일어났다.

로봇의 고장 기록 읽기약 1분

도서관 청소 로봇 4호가 오후 세 시마다 멈췄다. 남쪽 창가, 어린이 책장 옆에서 정확히 칠 분 동안. 바퀴도 센서도 정상이었다. 담당 기사인 나는 ‘간헐적 원인 불명’이라는 말을 보고서에 세 번이나 썼다. 네 번째 방문에는 로봇 옆에 의자를 놓고 기다렸다.

세 시가 되자 로봇이 멈췄다. 햇볕이 창틀을 지나 바닥에 네모를 만들었다. 아이 하나가 와서 네모 안에 앉았다. 로봇의 손잡이에는 작은 손수건이 걸렸다. 아이는 그림책을 펼쳐 소리 내어 읽었다. 로봇은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충전 표시등을 한 번 깜박였다.

아이가 떠난 뒤 기록을 확인했다. 로봇에는 독서 기능이 없었다. 손수건이 거리 센서를 가리면 안전 정지가 걸리고, 배터리가 충분하면 칠 분마다 표시등이 깜박일 뿐이었다. 나는 손수건을 치우고 시험 운전을 했다. 4호는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퇴근 직전 도서관에 의자 하나를 신청했다. 남쪽 창가, 어린이 책장 옆에 놓을 작은 의자였다. 수리 보고서는 한 줄이었다. ‘장비 정상. 다음 방문은 내일 오후 세 시.’ 준비물 칸에는 내가 읽을 그림책 제목을 적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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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미스터리

영수증의 숫자

물건값과 맞지 않는 숫자가 매번 영수증 아래 적혀 있었다.

영수증의 숫자 읽기약 1분

오래된 문구점에서는 영수증 맨 아래에 연필로 숫자를 적어줬다. 12, 7, 19. 날짜도 금액도 아니었다. 복권 번호냐고 묻자 할아버지는 웃기만 했다. 나는 이사하기 전 마지막으로 가위를 사면서 모아둔 영수증 다섯 장을 내밀었다. “떠나기 전에 정답은 듣고 싶은데요.”

할아버지는 계산대 옆 서랍에서 공책을 꺼냈다. 영수증의 숫자는 공책 페이지였다. 열두 쪽에는 열쇠 그림이, 일곱 쪽에는 토끼 필통이, 열아홉 쪽에는 파란 장갑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 밑에는 찾으러 온 날짜와 짧은 설명이 붙어 있었다. 동네 분실물 장부였다.

“손님한테 필요한 페이지를 드려요. 혹시 본 물건이 있을까 해서.”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말을 해주셔야 알죠. 할아버지는 잠깐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공책을 한 장 더 넘겼다. 스물여섯 쪽에는 낯익은 빨간 우산이 그려져 있었다. 내가 석 달째 찾던 우산이었다.

설명 칸에는 ‘주인: 숫자만 보고 가는 청년. 두 번 설명했으나 이어폰 착용’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한쪽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할아버지가 계산대 밑에서 우산을 꺼냈다. 오늘 영수증에는 숫자 대신 크게 ‘잘 살아!’가 적혀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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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미스터리

빈방의 예약자

매주 목요일, 아무도 오지 않는 방에 예약이 들어왔다.

빈방의 예약자 읽기약 1분

작은 연습실을 인수한 뒤 이상한 예약을 발견했다. 매주 목요일 저녁 일곱 시, 삼 번 방. 입금은 정확했지만 예약자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연락처에 전화를 걸면 늘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갔다. 빈방을 밝히고 난방을 켜두는 게 아까워 네 번째 목요일에는 불을 껐다.

칠 시 십 분, 관리 휴대전화에 문자가 왔다. ‘오늘 삼 번 방 운영 안 하나요?’ 놀라 복도를 확인했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 답장은 짧았다. ‘건너편 병원 육 층.’ 창문 쪽으로 가니 골목 너머 작은 불빛 하나가 깜박였다.

예약자는 손 수술을 받은 피아노 조율사였다. 예전에 이곳 삼 번 방에서 일했다고 했다. 입원한 병실에서 연습실 창문이 보였고, 불이 켜지면 퇴근하지 못한 날처럼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나는 피아노 건반을 한 번 눌렀다. 병원까지 소리가 닿을 리 없는데도 곧 문자가 왔다. ‘잘 있네요.’

두 달 뒤 그 사람이 직접 찾아왔다. 삼 번 방에 들어가 창문부터 열고 피아노를 살폈다. “조금 틀어졌네요. 제가 맞출게요.” 작업이 끝나자 그는 골목 건너 병원 창문에 손을 흔들었다. 이번에는 불이 꺼진 빈 병실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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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하는 반전

별점 하나의 손님

우리 숙소에는 사람보다 까다로운 단골이 있었다.

별점 하나의 손님 읽기약 1분

가족이 운영하는 작은 숙소에는 일주일에 한 번 별점 하나짜리 메모가 남았다. ‘이불이 무겁다.’ ‘창문을 더 열어라.’ ‘아침 메뉴가 형편없다.’ 메모는 언제나 창가 책상 위에 있었다. 숙박 앱에는 올라오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누가 쓰는지 몰라 아버지와 나는 객실 청소 때마다 긴장했다.

이불을 바꾸고, 창문 고정 장치를 손보고, 아침 빵도 바꿨다. 평점은 여전히 한 개였다. 어느 날에는 ‘직원이 자꾸 배를 만짐’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제야 나는 복도 끝 고양이 방석을 봤다. 아버지는 휘파람을 불며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범인은 아버지였다. 정확히는 아버지가 대신 써준 숙소 고양이의 후기였다. 한가한 비수기에 나를 웃겨보려 했는데 내가 너무 열심히 고쳐서 말을 못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산 새 이불 세 채의 영수증을 아버지에게 펼쳐 보였다. 고양이는 그 위에 누웠다.

다음 날 창가에는 별 다섯 개짜리 메모가 놓였다. ‘환불 정책에 만족함.’ 그 아래에는 아버지 카드와 작은 글씨가 있었다. ‘단, 간식 비용은 별도.’ 나는 처음으로 숙소 측 답변을 남겼다. ‘고객님, 카드 비밀번호도 부탁드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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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하는 반전

미래에서 온 경고

내일의 나는 다급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말이 없었다.

미래에서 온 경고 읽기약 1분

자정이 되자 화면에 내 얼굴이 떴다. 학교 때 만들다 만 영상 예약 프로그램이었다. 화면에는 내일 날짜가 찍혀 있었다. 영상 속 나는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세 시, 절대 문을 열지 마.” 뒤에서 쾅 소리가 나자 영상이 끊겼다. 나는 방문과 현관문을 차례로 확인했다.

다음 날 두 시 오십 분부터 집 안의 모든 문을 잠갔다. 택배 기사에게는 문 앞에 두어 달라고 했다. 냉장고도 열지 않았다. 정확히 세 시, 초인종이 울렸다. 친구였다. 약속을 잊었냐고 했다. 나는 미래에서 온 영상 이야기를 하고 현관 앞에서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는 잠깐 조용하더니 크게 웃었다. “그거 어제 내가 편집한 거잖아. 너 냉장고 정리 영상.” 나는 휴대전화로 원본을 찾았다. 화면 속 내가 말했다. “내일 세 시, 절대 문을 열지 마. 촬영 중에는 고양이 들어오니까.” 뒤의 쾅 소리는 냉장고에서 떨어진 반찬통이었다.

편집본이 예약 폴더에 들어갔고, 날짜 표시도 하루 틀려 있었다. 나는 안심하고 현관문과 방문을 열었다. 친구가 들어왔다. 거실에서 기다리던 고양이도 방 안으로 돌진했다. 거기에는 오늘 촬영하려고 세워둔 도미노 오백 개가 있었다. 미래의 나는 경고를 너무 길게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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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여덟 이야기는 이 단편집을 위해 쓴 창작물입니다. 인물과 사건은 허구이며, 실제 사연을 옮긴 글이 아닙니다.